우리나라역사15] 일제강점기 PART3(정치, 문화)

저번 포스팅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전개 및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 대하여 시기별로 살펴보았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및 문화에 대하여 시기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910년대(헌병경찰통치)

 

1. 정치

 

1910년 한일 병합이 일어나고, 일본의 손아귀에 조선이 넘어오게되면서 기본에 사용하던 한글을 비롯한 조선의 문화를 뿌리뽑겠다는 일념으로 헌병경찰통치가 시작됐다.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언론, 출판의 자유를 박탈하고 조선태형령(1912년)을 시행하여 조선인에게만 차별적인 법을 적용시켰다. 또한 일본 군인 제복과 칼을 차고 학교 수업을 하는 등 초기 조선인에게 겁을 주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본격적으로 일본은 조선의 토지를 약탈하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다. 토지조사사업이라 함은 재정의 기초를 마련하고 식민 통치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복잡한 방법과 짧은 신고기간을 두어 조선의 땅 40%를 일본의 소유로 만들었다. 여기서 살펴보아야할 점은 기간내에 신고를 한 사람마저도 일본의 요구에 손응하고 일본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심어주어 겉으로는 토지를 빼앗아가지만 내면으로는 식민지에 자연 적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 정책이다.

 

또한 회사령을 반포하여 회사설립에 관하여 일본 통감의 허락을 받게 했다. 이는 민족 자본회사의 설립을 억제하여 철저한 일본식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2. 문화

 

가장 중요한 교육부분에 있어서 제1차 조선교육령을 반포하였다. 보통학교 수업을 6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였고, 이에따라 일본어 보급과 노동력 착취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는 국문연구소를 설립하여 주시경을 중심으로 최초의 한글 연구 기관을 설립하여 일제에 대항하였다.

 

또한 무단통치시기에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들어서고, 문학으로써는 이인직 「혈의누」 최남선 「해에서 소년에게」등이 출현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1920년대(문화통치)

 

1. 정치

 

10년대가 헌병경찰을 동원하여 무력으로 겁을 주고, 조선인들에 대하여 강압적으로 통치를 했던 시기라면, 20년대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위협을 느낀 일본은 문화통치를 시작한다.

 

대표적으로는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를 탄압했으며, 신미증식계획을 실시하여 일본의 급성장에 의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조선의 수리 시설 등을 개선한다는 명분하에 소작료를 과도하게 징수하여 조선의 농민이 피해를 입은 것을 말한다.

 

또한 1910년도에 실시한 회사령을 철폐하였는데, 이유는 이당시 미국에 의해 자유경제체제가 발전함에 따라서 일본의 기업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게끔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2. 문화

 

1920년대 문화에서 크게 두가지 운동이 있다. 첫번째 운동은 물산장려운동(1920년)으로써 회사령 철폐에 따라 일본회사와 경쟁이 일어나며 "조선의 사람, 조선의 것"을 강조하며 "우리가 만든 것을 우리가 쓰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양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두번째 운동은 민립대학설립운동(1922년)인데 결론적으로 모금부진으로 실패로 끝나고 일본이 세운 경성제국대학이 들어섰지만 이 과정 속에서 이상재(추후 신간회 회장직)의 주도로 조선의 대학을 처음으로 우리 힘으로 세우자로 시도했던 운동임을 볼 수 있다.

 

또한 인권운동도 볼 수 있는데, 어린이운동(1921년)과 형평운동(1923년)이다. 어린이운동은 천도교 소년회의 김기전, 방정환을 중심으로 동학(천도교)를 기반으로 실시했던 운동이고, 형평운동은 신분 해방이후에도 백정에 대한 차별로 인하여 일어났던 운동이다.

 

또한 1920년대에 신경향파가 등장하여 카프(KAPF)를 결성하여 프로문학을 추구하고, 대표적인 영화로써 나운규 「아리랑」등이 있었다.

 

1910년대 국문연구소(주시경)를 계승하여 조선어연구회(1921년)가 창립되어 가갸날 제정 및 잡지 한글 등을 발행하였다.

 

 

1930~40년대(민족말살정치)

 

1. 정치

 

3.1운동을 계기로 문화통치, 즉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달래고 어루었던 문화통치시기 이후 30년대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루게 된 일본은 10년대 무단통치시기보다 더욱더 강압적으로 민족말살을 하기위한 정책을 펼쳤다. 대표적으로 창씨개명, 한글사용금지, 신사참배, 황국 신민화로써 조선을 더욱더 일본의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다.

 

또한 병참기지화 정책(1931년)을 실시하여 민주사변이후 한반도를 무기 및 식량 제조 창고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한반도를 통해 중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물자의 부족분을 채웠다. 이것의 예로써는 강제징용령, 학도병지원제, 여자정신근로령 등이 있다.

 

2. 문화

 

일본의 강압적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사를 중심으로 문맹퇴치운동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로써 일어나게 되는데 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1929년)과 동아일보의 브나로드운동(1931년)이다. 또한 순수문학과 저항문학도 부흥하게 되는데, 순수문학의 김영랑 「모란이피기까지는」, 저항문학에 윤동주 「하늘과 바람 별과 시」등이 있다.

 

또한 20년도에 결성된 조선어연구회가 조선어학회로 발전하여 한글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를 제정하는 등 우리말에 대한 운동을 하였으나, 광복3년전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이 발발하게 되면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35년간의 기간을 3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일제의 압박과 강압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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