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포스팅에서는 고려시대의 불교와 고려말 성리학의 보급에 대해 살펴보고, 조선시대의 간단한 왕 흐름에 대해 살펴봤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의 왕업적을 중심으로하여 살펴보겠다. 앞전에 설명하였듯 조선은 조선을 세우고 왕권과 재상중심의 정치를 놓고 분쟁하던 시기, 훈구파로 인해 사림이 화를 입었다는 사화시기, 붕당정치, 탕평책, 세도정치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왕권강화와 재상통치기간의 왕들의 간략한 업적을 살펴보겠다.
1대왕) 태조(재상중심)
고려말 신진사대부(정도전)를 책사로 하여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 삼봉 정도전의 정치적 사상과 특징이 태조시기 살펴볼 주요한 내용인데, 먼저 정도전은 왕 중심이 아닌 재상중심의 정치 체계를 주장했다. 즉, 신하가 어진 임금을 인도한다는 뜻이며, 수많은 저서가 있지만 그 중 「불씨잡변」이 있다. 조선경국전은 조선 최초의 법전으로써 통치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법전이며, 불씨잡변은 불교를 비판하며 성리학적 통치이념을 확립한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3대왕) 태종(왕권강화)
재상중심 정치에 반대하였던 태종은 왕권을 잡고 왕권강화를 위해 힘썼다. 정치, 경제, 문화로 다양한 업적을 세웠는데 먼저 정치로써는 6조 직계제를 설치하여 국왕중심의 정치체계로 변화시켰다. 졍제부분은 호패법을 실시하여 16세인 양인 남자는 호패를 차게 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주민등록증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과부의 재가금지를 하였는데, 이후 제1차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마지막 문화부분에서는 중국을 그대로 차용하여 50:50 대칭적인 경복궁과 다르게 자연지세를 그래도 이용하여 자연에 순응하는 창덕궁을 건립했다. 또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여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한 지도도 태종시기에 나타났다.
4대왕) 세종(재상중심)
왕권을 강화시켰던 태종이 있었다면, 다시금 재상중심의 정치가 세종 때 다시 시작된다. 초기 조선건국 태조당시 시행했던 정책들이 발전이 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로 살펴볼텐데 먼저 정치부분에서는 의정부서사제를 두어 우의정, 좌의정, 정의정으로 구성된 재상중심의 정치를 이끌었다. 또한 집현전을 개편하여 학자를 양성하였다. 경제부분으로는 공법을 실시하였다.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나누는 전분 6등법과, 풍흉기준으로 나누는 연분9등법이 나타났다. 마지막 문화부분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아는 훈민정음을 포함하여 당대 중국의 것을 우리나라만의 것으로 편찬하는 「농사직설」,「칠정산」,「삼강행실도」 등을 편찬하였다.
외교 부분으로는 대마도를 정벌, 부산포, 제포, 염포(3포)를 개항, 한양 내 북평관을 개설하여 여진족 사신에 대해 편의를 갖췄다.
7대왕) 세조(왕권강화)
재상중심의 정치에서 다시 왕권강화로 넘어오게 되는데, 세조는 계유정난(공신 한명회를 통한 수양대군의 왕권탈환)을 통해 왕위에 오르게된다. 정치, 경제, 문화적 측면 중 정치 부분을 살펴보면 태종때 시행하였던 6조 직계제를 강화하여 왕권을 강화했으며, 세종때 만들어졌던 집현전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료에게만 과전을 지급했다. 또한 불교 진흥을 위해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교경전을 간행하며, 완각사지 10층 석탑을 건립했다. 군사체제는 5위 체제(중앙군)와 진관체제(지방군)를 운영하였다.
중앙집권화를 하면서 지방호족의 반란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이시애의 난'이 있다.
9대왕) 성종(재상중심)
고려시대 성종때와 같이 통치조직을 정비한 조선시대 성종이고, 다시금 재상중심으로 돌아가는 왕이다. 정치부분에서는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사림파(김종직, 김일손)를 등용하고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하였다. 통치조직으로는 「국조오례의」(국가 의례 예법서로써 길,가,빈,군,흉례),「경국대전」(법전)을 편찬하였다.
조선시대 9대왕 성종까지 왕권강화와 재상중심의 통치를 번갈아가며 주장했던 왕들의 업적을 살펴봤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훈구파가 사림을 경계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림파가 화를 입었다나는 사화를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