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8] 조선 왕업적 PART2 (사화, 붕당정치)

 

 

 

앞선 포스팅에서는 조선건국 이후 통치방법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대하여 태조부터 성종까지 살펴보았다. 이번 포스팅은 성종때 기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을 등용하면서 각종 사화가 일어나고, 사화 이후 사림끼리 분열된 붕당정치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 사화

 

* 왕흐름 : 연-중-인-명-선

 

10대왕) 연산군(무오,갑자)

 

사화를 살펴보기에 앞서 왕이름 뒤에 "~군"이 붙는 것은 쫓겨난 왕을 뜻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시작하겠다.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성 훈구파와 새로 등용된 사림파 가운데 훈구파가 사림파를 견제하기 위한 사화가 일어난다. 연산군때는 무오년에 일어난 사화와 갑자년에 일어난 사화 두가지가 있다.

 

먼저 무오년에 일어난 무오사화의 배경으로는 유자광(훈구)과 김종직(사림)의 악연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김종직이 새롭게 왕이된 항우가 기존 왕이었던 초나라 의제를 죽이고, 그 죽음을 조문하는 '조의제문'을 쓴 것과 김일손(사림)이 성종 실록 사초에 시록했다는 것을 계기로 훈구파(유자광)가 직전 조선왕(계유정난: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왕위를 탈환한 것)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냐며 김종직(사림)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사림)을 능지처참 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갑자년에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비 폐출문제로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 희생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11대왕) 중종(기묘)

 

중종때 사화를 보기에 앞서서,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조광조의 개혁정치는 소격서를 혁파하고, 유향소를 폐지하며, 향약을 주장하며, 훈구파의 위훈삭제를 주장한다. 이중 훈구파의 위훈삭제(거짓으로 공훈을 등록한 훈구파를 처단하자)가 빌미가 되어 기존 훈구파들이 사림을 공격한 사화, 즉 기묘사화가 전개된다. 이 결과 조광조는 유배를 가게되고 사림파는 몰락하게 된다.

 

13대왕) 명종(을사)

 

명종 을사년에 대윤(인종)과 소윤(명종) 세력간의 다툼, 즉 을사사화가 일어나게 된다. 명종이 즉위하고 소윤이 대윤을 공격하여 소윤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고, 이로인해 대윤은 숙청을 당하게 되며, 척신정치(친척들이 신하가 되어 정치를 한다)가 형성되어 저정과 민생이 피폐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로써 직전제(광해군)를 폐지하고 늑봉제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삶은 더욱더 어려워져만 갔다. 이러한 피폐한 민생 속에서 '임꺽정의 난' 이 발발하여 경기와 황해도 중심으로 백정 임꺽정이 일으키며, 탐관오리의 재산을 도둑질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사건도 있었다.

 

 

2. 붕당정치

 

앞서 훈구파가 사림파를 공격한 4가지 사화이후 , 몰락한 사림파는 지방 및 산간으로 내려가 서원과 향약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세력을 다져 14대왕 선조때부터 사림파들이 집권을 하게된다. 이후 사림파 내부에서 같은 사림파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붕당정치라고 한다.

 

14대왕) 선조(동인의 분열→북인&남인, 대북>소북)

 

이조전랑직을 계기로 서인과 동인이 나뉘게 된다.

서인은 기존 사림파(기호학파)로써,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하여 심의경이 주축이 된다.

동인은 신진 사림파(영남학파)로써,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하여 김효원이 주축이 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이 발발하게 되는데, 이는 서인 정여립이 동인편에 가담하여 서인을 비판하고 이를 선조가 탐탁치않게 여겨 유배를 보내고, 유배를 가있던 정여립이 역모를 준비하고 있다는 누명을 씌워 동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을 말한다. 그리하여 정철(서인)이 주도하게되는데, 건저의 사건(정철이 선조에게 세자 책봉을 건의) 이후 크게 노한 선조는 정철을 유배보낸다. 이후 동인이 집권하게 되는데, 동인 세력 중 정철의 처벌문제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게 된다.

이후 임진왜란(1592년) 발생한 뒤 북인은 대북(광해군)과 소복(영창대군)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성종 이후 등장한 사림파를 기존의 집권세력인 훈구파가 시기하여 공격했던 4차례의 사화와, 선조 이후 사림파 내부에서 뜻이 맞지 않아 서인, 동인으로 나뉘고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는 사림파의 분열을 살펴보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사림파가 분열되어 사림파 내부에 쟁탈전, 즉 붕당정치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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