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온돌


 

이번시간에는 고려시대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고려후기에 주로 나타난 특징중 하나인 온돌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삼국시대의 온돌

온돌은 13세기 이전에도 나타난것으로 보입니다. 온돌은 철기시대 때부터 고래가 나타났으며,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발전 했습니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한줄이나 두줄고래가 벽 한쪽에 길게 구성되어지는 정도로써 방전면에 구성되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2. 고려초기 온돌

고려시대때에 와서는 방바닥 전면에 온돌이 깔리는 구조였는데, 고려시대 초기 온돌의 형태를 살펴보면 ㄱ자형 고래가 나타났던 흔적을  미륵사지 서회랑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ㄱ자형 고래 뿐만아니라 고래가 4줄로 깔리고 외부에 아궁이가 설치되었던 흔적 또한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감은사지 서회랑에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의 1~2줄 고래의 형태에서 발전하여 4줄고래나 ㄱ자형 고래로써 나타남을 알 수있습니다.

 

3. 고려후기 온돌

대표적인 사례로는 양주 회암사지 서승당 건물터의 ㅌ자형 구들인데, 이는 방바닥 전체를 온돌로써 활용한다는 점에서 전면구들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후기에는 온돌이 살림집에만 적용된것이 아닌 사찰이나 향교등에서도 나타났고, 비교적 추운 북부지방 뿐만이 아니라 온난한 남부지방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 주목해야할 점입니다.

이로써 전면온돌의 도입으로 인하여 기존에 바닥에 전돌이나 돌을 깔고 의자나 탁자를 두어 생활하던 입식생활구조에서 좌식생활구조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다만 이 전면온돌구조는 고려(한반도)만의 유일한 특징은 아니고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후 16~17세기경 도입된 사례를 볼 수있습니다. 하지만 14세기에 전반적으로 전면온돌을 사용했던 나라는 한반도가 유일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전면온돌이 나타나면서 생긴 변화와 더불어 더욱더 획기적인 변화는 평면의 변화입니다. 온돌의 아궁이와 주방의 부뚜막이 공통된 특징은 불을 켠다는 것인데, 아궁이와 부뚜막이 합쳐져 자연스럽게 부엌이 실내안으로 들어오고 한 지붕아래 온돌과 마루와 부엌이 존속하는 평면형태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산의 맹씨행단이 있습니다.

 

4. 온돌의 견해

온돌은 서민의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률적인 생각이라고 사료됩니다. 고려시대 온돌이 적용된 건물의 용도를 살펴보면 서민층외에도 사찰이나 귀족의 주거형태도 많이 나옴에 따라 서민에서만 시작됬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온돌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래를 켜야하는데, 고래를 킬정도의 생활력이나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에 일반적인 서민층에서도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던 층에서 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고려시대 온돌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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