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2]여러나라(부여,고구려~)

 

 

앞선 포스팅에서 역사의 태동(구석기~철기시대~고조선)을 살펴봤다.

 

[대한민국 역사/한국사] - 대한민국역사1]역사의 태동(구석기~철기시대)

 

 

 

 

 

이번에는 위만조선(고조선)이 '한나라 무제'로 인해 B.C 108년 멸망하고 난 뒤 각 지역에 여러나라의 등장을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기준으로 살펴보겠다.

 

A. 부여 

가장 좋은 영향력이 많은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하나의 왕이 다스리는 것이 아닌, 5부족 연맹왕국이다. 왕은 있지만 제가(마가,우가,저가,구가)가 다스리는 형식이다. 즉, 왕은 중앙을 나머지 4부분은 각 제가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리는 형식이다. 왕권은 낮으며 흉년이 들면 왕을 바꾸거나 죽이는 것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법률 및 풍습은 1책 12법, 형사취수제, 우제점복, 엄벌에 처하는 형벌, 순장, 영고 등이 있다. 먼저1책 12법은 도둑질을 하면 12배 변상해주는 것을 말하며, 형사취수제는 형이 죽으면 형수를 동생이 취하는 것을 말한다. 우제점복은 전쟁이 나면 소를 잡아 그 발굽을 살펴서 길흉을 점치는 것을 말하며 엄벌에 처하는 형벌은 감옥이 있고 살인자 및 간음자 투기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일부다처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순장 풍습은 죽은 사람과 함께 산사람을 같이 묻는 장례풍습이다. 현재로써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장풍습은 신라 지증왕때 우경을 실시하면서 순장을 없애버렀다.

'영고'라고 하여 12월, 음력 정월에 대회를 열어 연일 먹고 마시며 놀고, 감옥의 죄인도 풀어주는 제천행사도 있었다.

 

B. 고구려

부여와 마찬가지로 연맹국으로써 계부루,소노부,절노부,관노부,순노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가회의를 통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며, 왕아래 고추가, 상가, 대로 등의 제가가 있다. 그리고 부경이라는 창고를 두어 집집마다 약탈을 하는 관습이있다.

법률 및 풍습은 부여와 동일한 1책 12법, 형사취수제가 있으며 부여와 다른점으로는 서옥제(신랑이 신부집에서 서옥을 짓고 장성하면 신랑집으로 가는 것)와 동맹(10월)의 제천행사가 있다.

 

C.옥저

부여와 고구려와 다르게 옥저는 왕이 없고 삼로,읍군이 통치하는 군장국가이다. 옥저는 군장국가에서 고구려에게 흡수되었다. 이는 옥저가 평야지역의 비옥한 땅을 소유하고 있기에 각박한 고구려의 근접한 국가로써 흡수되기 좋은 여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법률 및 풍습은 민며느리(여나 나이 10세가 되기 이전 약혼, 결혼시에 친정에 돈을 지불하고 신부를 데려가는 것)와 골장제(장례를 지낼 때 반드시 목곽을 짜고 안에 뼈를 묻어두는 것)가 있다.

 

D. 동예

동예는 군장국가이다. 왕이 없고 읍군, 삼로가 통치한다. 단궁,반어피,과하마 등이 특산물로써 유명하다.

법률 및 풍습은 책화(부족간 경계를 중시하고, 침범시 소,말,노예로 변상하는 풍습)와 족외혼(같은 성끼리 결혼하지 않는 것, 현재의 근친상간과 비슷)과 무천(10월의 제천행사)이 있다.

 

E. 삼

제청일치였던 고조선과 다르게 삼한은 제정분리다. 즉 제사를 하는 제사장과 정치를 하는 사람을 각기 배치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삼한은 3개의 한으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각각 한,진한,변한으로 구성된다. 그중 변한은 철이 유명해서 마한, 왜인등이 철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벼농사가 발달하여 두레 및 저수지가 발달했다.

법률 및 풍습은 천군(천신에게 제사를 하는 제사장)과 소도(신성지역, 큰나무에 북과 방울을 매달아 귀신 섬김)로 제정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릿날(5월)과 계절제(10월)을 지내며 제사를 드렸다.

 

F. 가야

가야는 전기 금관가야와 후기 대가야로 나누는데, 전기 금관가야부터 살펴보면 가야는 현재 김해지역에 김수로가 세운 나라로써 구지부에서 '구지가'노래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것은 하늘에서 황금알 여섯개가 내려와 12일 후 알에서 사람이 부화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을 김수로라 칭한다.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와 결혼을 했다. 전기가야의 경제는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며 중계무역으로 번성했으며, 철을 화폐처럼 사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유적지로써는 김해 대성동고분(판갑옷)과 부산 복천동 고분군 등이 있다.

후기 대가야는 현재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이진아시왕이 다스렸다

최치원의 「석이정전」을 보면 이진아시왕 탄생 설화가 나오는데 "가야산의 산신인 여신 정견모주가 하늘의 신인 이비가지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명을 뇌질주일이고, 다른 한명은 뇌질청예이다.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라고 한다. 대가야의 경제는 벼농사와 철 생산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대표적인 유적지는 고령군에 위치한 지산동 고분군(금동관과 판갑옷과 투구 등이 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은 김구해라는 왕이며 신라에 항복해 결국 통일신라에 흡수되어 가야는 끝이 난다.

 

여기까지가 고조선이 멸망한 휘 여러나라(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가야) 등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본격적으로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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