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포스팅에서는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 각각의 주요한 왕 및 각 왕들의 업적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고려시대의 주요한 왕들과 그 왕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대왕) 태조
고려 1대왕은 태조 왕건이다. 도읍을 919년 건국 후 철원에서 개경으로 천도했으며, 관리는 개국공신과 호족을 관리로 등용했다. 또한 호족정책으로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를 도입했다. 사심관 제도는 통일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을 두어, 지방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또한 기인제도는 고려시대의 상수리제도를 이어온 것으로써, 조선시대 경저리 제도와 흡사하다. 이는 호족의 자제를 개성에 인질로 잡아두어 이또한 지방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쓰인다. 통치정책으로써는 「훈요10조」를 반포하여 후대 왕이 지켜야할 정책을 제사하기도 하였다.
「훈요10조」의 내용
1조 : 간신들이 사원을 쟁탈 못하게 하라(불교진흥)
2조 : 도선의 비보사찰 외 절을 짓지말라(불교진흥+풍수지리사상반영)
4조 : 금수의 나라 거란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북진정책)
5조 : 1년에 100일 이상 서경에 머물라(북진정책)
6조 : 연등회와 팔관회 행사를 줄이지 말라(불교진흥)
경제 민생안정책으로 조세를 1/10으로 줄이고, 역분전을 인품과 공로에 따라 지급했다. 또한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을 설치하여 민생 구제에 신경을 썼다.
외교정책은 청천강부터 영흥강까지 영토확장을 꾀했다.
4대왕) 광종
왕권강화를 꾀하였던 광종의 주요업적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시행, 관복제정 등이 있는데, 먼저 노비안검법은 956년에 시행된 법으로써, 양인이었다가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를 해방시켜 주는것으로써 호족 세력의 약화를 꾀하는 것이다. 또한 이로써 자연스럽게 왕권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과거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958년에 시행되었으며 유학자 등용으로 신구세력 교체를 도모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1859년 갑오개혁 1차 당시 사라지기전까지 조선 및 대한제국시대까지 이어진 공무원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로 관복색 제정을 했는데 통일신라의 법흥왕 공복제정(자,비,청,황)색과 자색, 단색, 비색, 녹색으로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6대왕) 성종
통치조직을 정비한 고려시대의 왕으로써, 중앙관제를 2성 6부로 정비하고, 도병마사, 식목도감, 중추원을 설치하였다. 「최승로의 시무28조」를 통하여 개혁을 주도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시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지방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12목을 두고 처음으로 지방관을 파견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유교를 강조하였는데 예로써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치하고, 향학을 실시하였다.
+거란의 침입
1차) 성종집권시기 :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 획득 및 압록강 진출
2차) 현종집권시기 : 흥화진에서 양규의 활약, 초조대장경 조판시작
3차) 현종집권시기 : 강감찬의 흥화진전투, 귀주대첩 승리 후 천리장성 축조
17대왕) 인종
인종을 기점으로 고려시대의 전기와 후기로 나뉘게 되는데, 이유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계기로 기존 문신의 집권에서 무신의 집권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먼저 이자겸의 난을 살펴보면 경원 이씨의 권력독점으로 인종과 측근이었던 이자겸 사찰을 시도하면서 위협을 느낀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자겸을 제거하고 경원이씨를 퇴출 시킨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묘청이 서경천도운동을 실시했는데, 묘펑은 금을 정벌하고 칭제건원을 주장하였다. 이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주장하는 묘청(서경파)과 신라 계승의식을 주장하는 김부식(개경파)의 대립으로써 시작되며, 시도는 되었지만 끝내 성공하지는 못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문신들에 의해 고통받고 있던 무신들의 메시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몽골의 침입
1차) 박서 장군의 귀주성의 승리
2차) 김윤후 스님의 처인성 전토의 승리
3차) 무조건적인 약탈로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31대왕) 공민왕
약 100년간의 원 간섭기 및 무신집권기를 끝으로 공민왕때 들어서 "반원자주정책"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타난 왕이다. 이 정책으로써는 정방폐지(인사권 이부, 병부로 환원), 정동행성이문소(원의 범죄단속 기관)폐지, 친원파제거, 쌍성총관부 수복(이성계장군업적)등이 있다. 또한 신돈스님을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국가 안정을 도모하였다.
34대왕) 공양왕
고려시대의 마지막왕으로 집권기간은 3년에 그치고, 조선을 건국하기위해 세워진 왕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조선 건국을 위한 토지개혁인 과전법을 급진 개혁파의 주장대로 시행했고, 이것은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되었다.
고려왕족의 약 500년 역사를 주요 왕 및 왕들의 업적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고려시대는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전,후기로 나뉘고 무신집권기 이후 원 간섭기로 피폐해진 고려를 다시 회복하고 다시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자는 급진개혁파가 등장하게 된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고려시대의 문화, 정치, 대외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