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건축(원간섭기)

이번시간에는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건축적 특성 및 건축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고려 전기(중세건축의 시작)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고려라는 나라는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사찰을 꾸렸는데, 앞선 대칭적으로 틀 안에 형성되었던 남북국시대와는 다르게 자연에 순응하며 자유로운 배치임을 살펴보았었습니다.

또한 석탑과 부도 역시 표현장식이 많이 가미되어 화려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지방호족의 권한이 세지면서 각각의 지방의 특색이 있는 석탑이나 당간지주등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도선이 들여온 풍수지리설 또한 산간에 집이나 사찰이 많이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도참설은 수많은 사찰과 탑을 세우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아 고려의 궁궐 또한 자연지세에 순응하며 분지인 개경에 위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따라 도로들은 구불구불하며 궁궐진입 방식이 동남측에서 북서측으로 이루어 지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적요소와 토착적 요소가 절충된 모습이며, 고려는 단순히 중국의 것을 수용하는데 그치는 것이아니라 고려의 여건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는 귀족사회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고려청자와 고려불화와 같이 귀족사회를 반영하는 세련된 예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와 더불어 11~12세기 석종형 부도가 나타나는 것도 주목해야할 것이었습니다.

성종집권시기 이후로 건축공사는 공부가 주관하고 장작감이 장인들을 관리했는데, 이를 계기로 지방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없어 스님들이 직접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 초기와 양란이후에 승려장인들이 활약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와같이 고려전기의 건축적 특징에 대하여 다시한번 살펴보았고, 고려후기의 건축적 특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신집권기 흐름

1170년 보현원 사건을 계기로 문신을 몰아내고 무신인 이의방이 무신집권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의방이후 무신들간의 권력다툼으로 한국사에서 다뤘듯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순으로 약 20년간 무신의 최고층이 바뀌게 되고, 1197년 최충헌이 권력을 잡고, 이후 최우가 권력을 잡게 됩니다. 흔히 최우 집권기를 무신의 절정기라고 부르는데, 이때 최우는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건축을 일삼았습니다.

이당시 피집권 세력이었던 문인중 이규보는 무인들의 화려한 건축과는 다른 소박하고 절제된 건축적 이상향을 그렸습니다.

 

2) 지눌의 수선결사 운동

귀족적 불교를 지향하였던 의천의 불교관을 비판하며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혜심과 요세, 보우등 다양한 스님의 업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당시 사찰의 특징을 보면 많은 건물들이 하나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큰 물줄기가 있는 곳에 사찰을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고 하나의 사찰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성종집권기때 우수 장인들을 관리하던 장작감이 생겨난 뒤 승려장인이 하나둘씩 탄생했고, 무신정변 이후 더욱더 활발하게 스님들이 건축에 몸을 담았습니다. 이당시 지어진 사찰은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조사당등이 있습니다.

 

3) 원간섭기

무신들이 집권하고 얼마되지 않아 몽골(원)이 6차례의 침공을 하게되고 결국 원나라의 지배를 100년간 받게됩니다. 이때 성리학이 조선에 최초로 들어오게 되며, 원나라의 건축술또한 같이 들어오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써는 원나라 기술자가 축조한 경천사지10층석탑이 있습니다. 성리학은 조선의 건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신지사류를 탄생시키게 된 엄청난 계기였습니다. 신진사류는 원나라에서 들어온 농사기술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원간섭기가 시작되며 지방에서는 향교의 확산과 도시정비가 이루어졌는데, 신진사류는 예제를 더욱더 중요시 여겨 대표적인 사례로 지방의 객사가 왕성히 건립됬다는 접입니다. 또한 객사가 들어서게 되면 주변에 누각이 자리잡기 마련인데, 이당시 불교사찰이 있던 곳에 누각이 지어지게 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 밀양 영남사에서 영남루로 건물의 용도가 변화된 사례입니다. )

앞서 말씀드렸듯 원나라의 영향으로 성리학이 들어옴과 동시에 신진사류의 유교적 영향력이 커지며 불교계는 위축되었으나 원나라의 영향이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라마교의 영향으로 지어진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 고려후기의 무신정변과 이후 무신집권기, 그리고 원간섭기에 건축의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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