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초기 지방가람(풍수지리설)

이번시간에는 고려시대 초기에 지방의 가람형태와 이에 영향을 준 풍수지리설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내용에서 9세기가 되면 개인위주의 영생기복을 기리는 석탑이 많이 지어지고, 기존 대칭적인 가람구성에서 벗어나 자연 지세에 맞는 자유로운 가람구성형식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려초기 가람배치, 부도

 

1. 고려초기 지방의 가람

이에 지방에서도 각 지방의 특성마다 독특하고 각각의 지세에 맞는 가람배치형식이 등장했습니다 이당시 신라의 국권은 바닥을 쳤으며, 지방호족의 기세가 올라갔던 시기였는데, 각 지방 및 지역의 호족들은 자신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을 통해 그리고 불교사원을 통해 펼쳐나갔습니다. 그 중 한강일대에 집중적으로 석조물이 분포했는데, 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 상당히 큰 규모의 당간지주, 거친 마감으로 당당한 자태

- 원주 거돈사지 석축 : 지형의 특성을 살려 사찰 경관을 구성(한강 상류지역의 개방적이며, 세부표현이 극상)

- 여주 고달사지 부도 : 배산임수지역의 지리에 안착하여 구성

- 청주 흥덕사지 : 지방호족세력의 종교적 의지를 반영

- 합천 영암사지 석등,축대: 지방 산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수준높은 조각(금강기단,계단) 및 건축물 조영(가야산과 지리산 사이 절묘한 위치)

- 충북 중원 미륵리사지 : 석굴사원, 거대한 석불입상이 조영

- 서산 비인 오층석탑 : 백제석탑의 특징(낙수면보다 기단석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구조)을 가지고있으며, 기단부가 허약해 보이는것이 특징이며, 이는 고려시대때도 멸망한 백제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부여 장하리 석탑 : 지붕부보다 탑신이 가늘어 허약해 보이는것이 특징

2. 고려초기 풍수지리사상

풍수지리는 음양과 오행이 합쳐져 하나로 되며 이것이 땅에 좋은 기를 탄생시킨 다는 개념의 학문입니다. 좋은기가 있는곳에 무덤이나 집을 지으라고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풍수지리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론이 정립되고 집권층 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 까지도 확산 된것은 고려시대부터라고 전해집니다.

이당시 승려 도선이 풍수지리설을 체계화 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것입니다. 도선의 비보사탑설은 지세가 약한 땅에 사찰을 세워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여야 한다는 이론과, 한반도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며 전라도지역이나 변두리 지방에도 사찰을 지어야 한다고 하여 이시기에 많은 사찰이 조영됬던 계기가 되곤 했습니다.

풍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간룡, 장풍, 득수, 정혈, 좌향, 형국 등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간룡 : 산맥에 흐름이나 형세를 보는것

- 장풍 : 산으로 둘러 싸이고 물을 막는것

- 득수 : 산으로 둘러 싸이고 물을 얻는것

- 정혈 : 생기가 집중되는 자리

- 좌향 : 정혈 위치에서 본 방위로 결정하는것

 

이렇게 풍수지리설은 산이 있는곳에 집이나 사찰을 짓게하여 전국적으로 균형이 있는 사찰건축의 토대가 되었으며, 모든것에 음과 양이 있으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이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기울어져 가는 신라왕실과 새롭게 건국될 고려 왕실에 밑바탕이 될 정도로 중요한 학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