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초기 가람배치, 부도


 

이번시간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부분인 대한민국 건축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재에 대하여 접근할 때 직접적인 부재에 대하여 연구하고 다루는 것은 당연히 시행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그 당시의 문화나 건축적 양식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문화재의 원형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춰 보수 및 시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시간에는 고려시대 초기의 건축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9세기 불교의 건축

고려시대는 불교가 공인되어 불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불교의 힘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고려후기 신흥무인세력과 성리학자들에 의해 불교는 억압받고 결국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와 성리학의 세상이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불교의 세계였습니다. 9~10세기 사이에 불교사찰은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대표적인 예로는 쌍탑식 가람구성과 더불어 탑을 하나만 두는 방식, 그리고 아예 탑을 건립하지 않는 방식도 나타났습니다.


* 9세기~ : 지형조건을 우선시 하여 배치하는 가람구성(당나라의 '선'사상의 영향)

→ 회랑을 두르고 좌우대칭적인 격식보다는 실질적인 종교의식에 대한 열망을 가람배치의 변화로 표현한 예입니다. 이로써 귀족적 불교가 아닌 민간적 불교의 선사상을 기반으로하여 새로운 가람이 나타났고 이후 지방 호족들의 성원에 힘입어 더욱더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1) 탑을 하나두는 방식의 사례 :경남 울주 간월사지

( 간월사지는 금당과 쌍탑의 거리를 멀게 떨어뜨리고 탑이 자연암반 위에 세워져 전체적 가람의 분위기를 변화 시켰습니다. )

2) 탑을 자연암반 위(애니미즘적 신앙)에 세우는 사례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3) 오지에 자리잡은 사례 : 강원도 양양 선림원지( 가람의 구성자체를 새롭게 모색하였다. )

 

2. 석탑, 부도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존치하고 모시기 위해 세워진 탑이라면, 부도는 승려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탑입니다. 부도는 8세기 무렵 나타나 앞서 살펴보았던 9세기의 불교의 전반적인 가람배치 및 선사상을 통한 변화로 인하여 부도또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8세기의 부도보다 더욱더 장식적이고 화려한 부도가 나타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국가적이며 형식적인 불교형식이 아닌, 개인의 신앙을 담고, 개인의 염원을 담은 것이 석탑과 부도에 반영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부도의 규모가 작아집니다.( 이중기단에서 단층기단으로 줄어드는 경향입니다.)

2) 팔각원당형이 9세기 나타나게 됩니다.( 신라의 독창적 부도입니다. )

3) 별석 받침이라는 부재가 나타나게 됩니다.

4) 기단 면석이나 탑신부에 장식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화려해 집니다.(조각이 많아집니다.)

 

사례) 진전사지 도의선사 부도(팔각형의 부도), 쌍봉사 철감선사탑(신라부도,조각의 끝판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