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수도 개경과 궁궐



이번시간에도 고려시대 초기시기에 해당하는 궁궐 및 주거형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려의 수도 개경

때는 10세기 말 성종이 집권하면서 통치조직을 정비하며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중앙집권이 강화된다는 뜻은

지방 호족이 제압된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고려의 초기 궁궐은 개경에 위치해있었는데, 개경은 지리적으로 분지의 형태로써 분지의 지형적 특색을 잘 살린 도시로 평가됩니다. (개경은 지금의 개성, 현재는 북한의 땅인 지역을 뜻합니다.)

또한 개경은 전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북측에 송악산, 서측에 오공산을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물의 흐름이 북서측에서 남동측으로 흐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풍수지리사상을 기인했다고 볼 수 있으며, 서해바다와 연접하여 해상을 통한 무역과 교통에 이점이 있어서 중국이나 타국가와의 교류가 활발 할 수 있었습니다.

개경의 성벽으로는 3중 성벽을 구성하였는데, 궁성과 황성이 처음에 설치되었고 11세기초 거란의 침략이 있었을 때 나성을 토축성으로 쌓아 총 3개의 성벽을 구성하였습니다. (3중 성벽은 주민들의 생활을 고려한 측면을 찾아 볼 수있습니다. 원래 전쟁이나면 피난을 가는것이 당대에 일반적인 것이었는데, 전시에도 생활 터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고려 3중 성벽의 특징으로 꼽힙니다.)

개경은 자연지세에 따라 길을 내고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이결과 중국의 좌우대칭적인 반듯한 가로 구획은 되지 않았으나, 주민들의 거주지는 5부 35방 344리를 기본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구역을 확실히 나누었는데, 이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기본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민 거주 단위를 '리'로써 구성된다는 점은 방리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경외에 위성도시로는 서경(현재의 평양), 동경(현재의 경주), 남경(현재의 서울)이 있는데 이중 제일은 서경이었습니다.

 

성종때 중앙집권화를 하면서 행정조직이나 관료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해서 왕권강화를 꾀했는데, 그중 예제와 제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제는 총 5가지를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1) 길 :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례

2) 가 : 왕실이나 가정에서 치르는 행사의 례

3) 빈 : 손님을 맞이하는 례

4) 군 : 군사에 관련한 례

5) 흉 : 장례를 치례르는 례

 

제사에는 국가적인 제사로써 꼽히는 4가지가 있습니다.

1) 원구 :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

2) 방택 : 땅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

3) 태묘 :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시며 제사를 지내는 것(종묘)

4) 사직 :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

2. 고려의 궁궐

고려의 궁궐의 진입방식은 자연적인 형태와 물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는데, 크게 북서측에서 남동측으로 물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궁의 정문은 동향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관청들이 남북방향으로 마주보는 형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동서방향으로 마주보는 광화문 및 육조거리와 상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건물의 명칭을 중국에서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으로 정신적인 방면에서는 중국의 궐제도 및 사상을 그대로 받아드렸지만, 궐 안에서의 국가적인 제사나 의례(5례:길,가,빈,군,흉)는 유교를 반영했다는것이 고려 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 궁안에서는 유교적 의례와 더불어 불교행사(팔관회, 연등회)등을 성대하게 열었는데, 이는 겉으로는 중국의 궐문화를 받아드리고, 내면으로는 유교와 불교를 한데 수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려의 궁궐은 중국의 것을 전적으로 수용한것이 아닌 기본으로 하되 고려의 지형적인 특징이나 유교 및 불교의 특징에 맞게 다듬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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